'착한' 목자?

오늘 미사중에 복음 낭독을 하는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우리 미사는 한국어 미사이지만, 미사중 복음만큼은 영어와 한국어로 두번 읽는다. 한국말이 서툰 2세들을 위한 배려인 것 같다.

그래서 요한복음 10장 11-18절이 먼저 영어로 낭독되었다.

11 I am the good shepherd. A good shepherd lays down his life for the sheep.
12 A hired man, who is not a shepherd and whose sheep are not his own, sees a wolf coming and leaves the sheep and runs away, and the wolf catches and scatters them.
13 This is because he works for pay and has no concern for the sheep.
14 I am the good shepherd, and I know mine and mine know me,
15 just as the Father knows me and I know the Father; and I will lay down my life for the sheep.
16 I have other sheep that do not belong to this fold. These also I must lead, and they will hear my voice, and there will be one flock, one shepherd.
17 This is why the Father loves me, because I lay down my life in order to take it up again.
18 No one takes it from me, but I lay it down on my own. I have power to lay it down, and power to take it up again. This command I have received from my Father."


복음을 들으면서 아, 어쩌면 이렇게도 내가 고민하는 문제에 대해서 딱 맞는 말씀이 있을까 싶었다.

요즘에 내가 진정한 남자다움에 무엇인가에 대해 계속 해답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 바 있다.

로버트 블라이에 따르면
, 소년은 남자 어른들의 인도에 의해 통과의례를 치름으로써 진정한 남자어른으로 태어나는데, 산업혁명 이후에 발생한 '남자 어른의 부재'로 인해 수많은 '남자의 탈을 쓴 소년'들이 가정과 사회에서 주위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존재가 되고 있다고 한다.

블라이의 경우에는 신화 속에서 그러한 통과의례의 핵심 요소를 발견하고 그것들을 현대에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블라이는 이 과정에서 교회의 역할에 부정적이며, 사실 교회가 '착한 소년'들을 양산해내는 원흉 중의 하라고 여기는 듯하다.)

그런데, 블라이는 이 '남자 어른의 부재'를 해결할 방법은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다. 심지어 아버지는 한 여자(어머니)를 두고 아들과 경쟁하는 관계에 있기 때문에, 아들을 제대로 남자로 이끌어 주기에 부적당하다고까지 이야기한다. 핵가족화와 산업 혁명으로 인해 우리 주위의 삼촌들, 아저씨들이 사라진 이때, 누가 소년을 남자로 이끌어 줄 역할 모델 (role model)이 되어줄 수 있을까?

존 엘드릿지(John Eldredge)나 고든 달비(Gordon Dalbey)같은 사람들은 완벽한 role model로 예수그리스도를 꼽는다. 흔히 교회에서는 예수그리스도를 비폭력과 사랑을 설파하다가 몸으로 직접 증거한 자비의 상징처럼 묘사한다. 그러나 현대의 남자들이 주목할 것은 기존의 억압과 부조리에 맞서 약자를 위해 몸을 던진 투사(warrior)로서의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일 것이다.
아마 내가 엘 그레코의 그림에서 강렬한 감동을 받은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한 모습이 오늘 복음에서도 등장한다. 예수그리스도가 보여주는 진정한 목자(혹은 내가 본 진정한 남자다움의 표상)로서의 모습을 정리해보자.

1. 그는 자기의 양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을만큼 강한 책임감을 지녔다. 고용인은 늑대를 보면 도망치지만, 참된 목자는 자기 양들을 두고 도망치는 법이 없다.

2. 그는 강인하다. 목숨을 내어놓는다는 것이 양들 대신에 늑대밥이 되어준다는 말은 결코 아닐 것이다. 칼과 지팡이로 늑대들과 목숨을 내걸고 격투를 벌여 양들을 보호하는 투사가 되어준다는 것이다.

3. 그는 대화를 통해 자기가 사랑하고 보호하는 대상과 깊은 교감을 가진다. 그는 관심이 있기 때문에 자기의 양들을 잘 알 뿐더러, 양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그들을 안심시킨다.

4. 그는 대의(大義)를 추구한다. 목자로서의 그의 사명은 자신이 소유한 양들에 머무르지 않는다. 따라서 1번에서 나타난 그의 책임감은 자기의 소유물에 대한 집착이 아님을 알 수 있다.

5. 그는 능동적이며, 스스로의 자유의지에 대한 확실한 자각을 가지고 있다. 목숨을 내어놓는 것은 온전히 그의 자유의지이며, 율법 등의 외부 압력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목숨을 내던질 권리를 당당히 외치는 모습. 얼마나 멋진가..



그런데, 영어복음을 들으면서 느꼈던 감동은 한국어 복음을 듣는 순간 단 3초도 못되어서 깨졌다. 왜 그랬을까.


11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 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13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14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15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16 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
17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
18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 나는 목숨을 내놓을 권한도 있고, 그것을 다시 얻을 권한도 있다. 이것이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명령이다.”


그것은 바로 '착한'목자라는 말 때문이었다. 내가 볼 때에 이것은 단어 선택이 잘못되었다. 착한 목자가 아니라 '선한'목자가 더 적당하다.

네이버 국어사전을 살펴보자.

착하다
[형용사]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어질다.
* 착한 일
* 그는 사람됨이 착하다.
* 그녀는 마음씨가 착하고 얼굴이 예쁘다.
*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복을 받는다.

선 善
[명사]
1 올바르고 착하여 도덕적 기준에 맞음. 또는 그런 것.
o 선을 쌓다
o 선을 행하다
o 이 세상에는 선과 악이 존재한다.
2 <철학>도덕적 생활의 최고 이상.
선하다 〔선ː--〕
[형용사]⇒선.


즉, 착하다는 것은 옳고 그름의 도덕적인 측면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부드러움을 나타내지만, 선하다는 것은 그 이상의 철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영어성경에서는 'The good shepherd"라고 하였는데, 그럼 영어단어 'good'은 무슨 뜻일까?
(출처: Dictionary.com)

good
–adjective
1. morally excellent; virtuous; righteous; pious: a good man.
2. satisfactory in quality, quantity, or degree: a good teacher; good health.
3. of high quality; excellent.
4. right; proper; fit: It is good that you are here. His credentials are good.
5. well-behaved: a good child.
6. kind, beneficent, or friendly: to do a good deed.
7. honorable or worthy; in good standing: a good name.

위에서 보다시피, 가장 먼저 등장하는 뜻은 우리말의 '선하다'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물론 5번, 6번의 뜻에서와 같이 '착하다'는 의미 또한 담고 있지만, 위에서 예수그리스도가 보여준 목자로서의 특질은 '선함'에 훨씬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검색해보니, 개신교에서는 실제로 '선한 목자'로 번역한 것을 알 수 있다. 뭐 공동번역에서도 '착한 목자'로 번역하었고, 그 이후 200주년 신약성서에서는 '어진 목자'로 번역하였는데, 착하다는 것보다는 훨씬 낫긴 하지만 '어질다'는 것은 너그럽다는 어감이 강해서 여전히 조금 불만이다.

괜히 말꼬리잡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착한 목자보다는 선한 목자를 따르는 한마리 양이, 그리고 나 스스로가 내 양떼를 이끌고 나갈 또 하나의 선한 목자가 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이 '착한' 목자에 유감이다.

by monocell | 2009/05/04 06:52 | 생각할거리 | 트랙백(1)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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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jmkee.egloos.com/4927657 대한민국 번역자들이 화학과 나온 포닥의 삼분의 일만큼만 언어적 감수성이 있었어도, 우리나라 번역서 품질이 이모양 이꼴은 아닐 텐데 말이야. - 용직...more

Commented by risknfun at 2009/05/04 09:17
좋네요.
Commented by monocell at 2009/05/05 06:18
Thanks!
Commented by lostnfound at 2009/05/05 05:49
좋은 글 감사.
Commented by monocell at 2009/05/05 06:18
감사까지야... 재미있게 읽었다면야 나도 좋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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