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4월 16일
"폴 포츠" 유감
요 며칠새 제 2의 폴 포츠라고 불리는 영국 아줌마의 동영상이 화제다. 관련 기사를 보다가, 예전에 써야지 하고 미뤄두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폴 포츠는 Britain's got talent라는 쇼프로그램에서 유명해진 젊은이로, 휴대폰 세일즈맨 등을 하면서 성악가의 꿈을 키워오다가 방송에서 '대박 뜬' 이후로 프로 성악가로 전향해 음반도 내고 공연도 다닌다.
폴 포츠의 스토리는 사실 상당히 감동적이다. 외모도 볼품없는 이 휴대폰 세일즈맨은 어려서 왕따에 시달렸고, 여러 질병에 시달렸지만, 성악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돈을 털어 이탈리아까지 날아가 파바로티의 클래스에 참가할 정도의 열정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텔레비전 무대에서 처음에 상당히 냉소적인 듯한 심사위원 앞에서 Nussun dorma를 불러 심사위원과 관객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으며 우승을 차지한다. 한편의 감동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이다. 나 역시 폴 포츠의 공연 동영상을 처음 보았을때 감동했으니까.
그런데, 나는 이제는 프로가 되어버린 폴 포츠의 스토리가 별로 탐탁치 않다.
그의 성공스토리는 외모 지상주의, 학벌 지상주의 등의 차별에 맞서 승리한, 우리 주변의 평범한 젊은이의 이야기로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감동주의'라는 또 하나의 차별을 만들어낸 셈이기 때문이다.
폴 포츠가 아마추어치고는 상당한 실력을 지녔음에는 분명하지만, 객관적으로 그 정도의 노래 실력을 지닌 성악가는 사실 수두룩하다. 폴 포츠와 비슷한, 어쩌면 더 뛰어난 실력을 지녔을 수많은 젊은 음악가들이 세계 여러곳에서 오디션을 보고 탈락의 아픔을 맛보고 있을때, 폴 포츠는 그의 스토리가 조금 더 감동적이라는 이유로 엄청난 기회가 주어진 셈이기 때문이다.
만일 Britain's got talent가 참가자들의 녹음 테이프만 놓고 블라인드로 진행되었더라도 폴 포츠가 우승했을까? 나는 상당히 회의적이다.
사실 주관 방송사나 음반사의 입장에서는 노래 실력은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진짜 노래를 잘해서이건, 아니면 얼굴이 잘생겨서이건, 감동적인 인생스토리를 지녔건 어쨌건 간에, 팔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폴 포츠의 음반을 사고, 그의 콘서트에 가는 사람들이 '감동'을 사러 가는 거라면 뭐 할 말은 없다. 그의 스토리 자체는 나도 감동받았으니까, 그러나 나라면 폴 포츠의 자서전이나 다큐멘터리영화 등등은 돈주고 사볼 의향이 있지만 음반이나 콘서트는 아니다. 그의 '음악' 자체는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한테 '천상의 목소리를 지닌 폴 포츠'라는 광고카피는 먹히지 않는다.
뭐 감동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에 대해서 내가 조금 까칠한 건지는 모르겠다만, 진짜 인간승리의 드라마를 듣고 싶다면, 토마스 크바스토프 (Thomas Quasthoff)의 이야기를 추천한다.
나는 5년쯤 전에 음반을 통해 이 사람을 처음 접했는데, 목소리가 참 마음에 들어서 씨디도 돈주고 사서 들었다. 그런데, 다음달에 이 사람이 우리동네에 공연을 온다고 해서, 표를 살까 하는 생각에 관련 공연 리뷰를 찾아보다가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크바스토프는 심각한 신체장애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장애인지는 아래 동영상에 나온다.)
그러나 내가 가진 씨디의 그 어느 구석에도, 그리고 그의 소속사의 소개 홈페이지 그 어느 곳에도 그의 장애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기 때문에 미처 모르고 지나쳤던 것이다.
정상적인 상황이 힘들 정도의 장애와 그에 대한 차별을 이겨내고 (그는 필수과목인 피아노를 칠 수 없다는 이유로 음악학교 입학을 거부당했었다) 세계 정상급의 성악가로 우뚝 섰지만 그의 장애를 내세우지 않는 크바스토프의 이 스토리야말로 진정한 승리의 인간드라마가 아닐까?
# by | 2009/04/16 10:02 | 아름다운 것들 | 트랙백(1) | 핑백(1) | 덧글(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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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시 두성으로 노래를 해야하는 거구나 그러니 저사람 목소리가 좋을 수가 있지
3) 팔리는 거랑 예술적 성취랑은 정말 다른 얘기인듯
4) 점점 학업장애 (learning disability)가 있다고 주장하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정작 내가 가르쳐본 제일 큰 장애가 있는 학생은 시각장애자였는데 (완전히 안 보임) 88명중에 5등안에 드는 멋진 학생이었다는.. 평생 기억에 남을 듯. 타자치면 나보다 오타도 적음.
3) 뭐 그야 사실 어디나 마찬가지... 좋은 저널에도 쓰레기 논문 많고, 훗날 고전이 될 논문이 이름없는 저널에 실리기도 하는 것 아니겠어?
4) 그런 사람들 보면 참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
b) 2년 전 크바스토브(저도 왜 이런 발음인지는...)에 갔을 때 사전 정보 전혀 없이 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 손으로 조금은 힘겹게 악보를 넘기는 모습이 불편해보였습니다. 하지만 목소리는 최고였습니다. 5월6일 카네기홀이죠? 저는 갑니다 :)
c) 그날 크바스토브 공연을 보고 와서 assistive technology에 더 관심이 갔습니다. 제가 공연에서 감동 받은 걸 조금이라도 돌려주고 싶더라고요.
b) 표는 사놓았는데, 아무래도 더 좋은 자리 표가 할인으로 풀리지 않을까..?
c) 멋지군!
그래도 폴 포츠씨의 노력 자체는 폄하가 되면 안되겠지만 성악가 분들도 그 위치까지 가기엔 뼈를 깎는 노력이 있었겠죠.
폴 포츠씨의 노력과 그 성악가들의 노력의 정도는 비교할 수가 없는 것이지만(어느 쪽이 더 어렵다 쉽다를 말하자는 것이 아닌 순수하게 비교 자체가 힘들다는 의미로)
폴 포츠씨의 의의랄까 그것은 일반인도 노력하면 된다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그 목소리가 단순히 노력만으로 될 것은 아니긴 하겠지만요)
브리티시 탤런트라는 프로그램이 생긴 것도 그러한 가능성을 넓혀준 것이지만 그 안에서 폴 포츠씨 정도로 성공(적어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까지 인식이 될 정도로)한 사람은 전 못봐서요(그 프로그램을 꾸준히 보는 분들이라면 많다고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감동주의라는 점에서는 그 당시 폴 포츠 붐이라고 불릴 정도의 과열 현상은 저도 탐탁치는 않지만 너무 그쪽으로 몰고 가는 것도 그렇지 않나 합니다.
일단 그 브리티시 탤런트 자체가 tv프로그램이니 외모나 그의 배경같은 것도 안나올 수 없고 인터넷에서 뒤지면 다 나오니까요.
그 감동을 사겠다는 분들까지 말릴 생각은 없습니다. 그걸 팔아먹는 사람들한테는 불만이 있지만..
다만, 앞으로는 그러한 감동은 존재하기 힘들겁니다. 이제 폴 포츠는 더이상 일반인이 아닌 '스타'가 되어버렸거든요.
그래서 제목의 "폴 포츠"에 따옴표를 넣은 것이고요.
쪽팔림을 무릅쓸 수 있는 것을 인간승리라고 하면 모를까... :)
제 주변에도 비슷한 생각하시는 분이 별로 없다고 생각해서, 떡밥던지는 심정으로 밸리에 올렸는데 공감하신다니 기쁩니다.
다만, 위에서 적은대로 차라리 그가 책을 썼거나 영화를 만들었다면 모를까, 프로 가수가 된 지금 그의 '노래'를 '감동'으로 포장해서 팔아먹는 상업주의가 맘에 들지 않을 뿐이죠.
띄워주기일 뿐이 아닌가,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음음.
천상의 목소리라고 음반과 콘서트표를 파는데 그건 좀 아니죠....
와, 근데 이런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는구나. 저 말고도.
주는 게 아닌 이상은요.폴 포츠 같은 상품화가 어디 한 두 가지겠습니까?^^;;;
폴 포츠랑 수잔 보일 노래 괜찮던데요.
주인장님이 폴 포츠의 노래가 마음에 안드시면, 안사시면 됩니다. 저도 폴 포츠의 노래를 굉장하다고 생각하는건 아니고, 또한 대단한 천상의 목소리로 포장해서 파는 광고는 불편하고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요. 그렇지만 "다른 성악가들도 저정도는 하는데" 라는 전제는 이미 폴 포츠의 노력이나 능력을 비하하는 선입견이 아닐런지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폴 포츠가 안됐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가 팔리는 이유는 그가 평범한 배경 출신의 신데렐라이지만, 이제 프로로 데뷔한 그는 더이상 신데렐라가 아니거든요. 대중의 기억력은 짧고, 아마 미디어가 제공하는 또다른 '감동'의 주인공에 곧 열광할 걸로 봅니다.
감동은 판다는 상업주의를 비판하시는것. 공감합니다. 요번에 수잔보일 을 봐도 스토리는 감동이긴하지만 노래는... 그 정도 하는 기수들은 많고 또 널렸을듯.
* 장애가 있었다니 금시초문. 후덜덜.
* BGT출신(?) 음반, 유일하게 두 개 샀어요. 사고 실망한 게 폴 포츠, 방송이란 참 포장을 잘 하는구나 싶었지요. 프로그램의 그 포장을 빼고 보니 담백하더군요. 실망 안 한 게 앤드루 존스톤. 음반만 놓고 봐도 괜찮았고, 오히려 프로그램에 짜증이 났던 (bully를 왜 자꾸 강조하는건데...)... 원래 앤드루 존스톤을 사고 들어 보니 괜찮길래 구매했는데, 폴 포츠에게서 내가 원했던 게 무엇이었는지, 왜 음반에 만족하지 못하는지 한동안 생각이 많았었지요.
* BGT는 폴포츠때문에 알게 되었으나 점점 불쾌해지고 있어요. BGT 성공 스토리를 포장하려다 보니 '본래의 삶'을 짓밟아 뭉개는구나 싶어서도 있지요. 원래는 이렇게 비참했으나 우리가 이렇게 만들어 주었어요! 빠밤! 하는 것 같은. 그렇네요. 불편하네요.
세상의 눈으로 보면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지만, 그럼에도 너무나 밝고 당당한 모습. 가사를 놓고 보면 매우 슬픈 노래인 "I dreamed a dream"을 매혹적으로 들리게 할 만큼...
저는 이런 장기자랑류의 프로그램이 참가자들에게 멋진 추억을 만들어주는 정도였으면 해요. 수잔 보일 아줌마도 pop star가 되는 순간, 그 이전의 당당하던 삶이 오히려 더 초라한 것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고요.
공감공감!
역시 처음의 거대한 감동이라는 것도
반복되고 적응될 수록 희미해지는 듯 해요.
대중은 그만큼의 감동을 그에게 계속 요구하겠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 그는 대중의 기억속에서 사라져 가겠지요. 미디어는 새로운 '감동의 상품'을 발굴해서 팔아치우면 그만이지만....